소신과 홍대병 사이
관심이 필요했던 사람
"야 너는 50m 떨어져서 봐도 너인 줄 알겠다"
"내 친구들이 너 사회대 핑크남으로 알던데?"
대학생 시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입었나 싶은 옷들이 당시의 내 옷장에 꽤 많았다. 특히 학교에 복학했을 쯔음, 내 옷장 안은 팔레트 🎨 그자체 였다. 핑크색 맨투맨과 핑크색 야구모자, 온 바닥을 다 쓸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펑퍼짐한 와이드핏의 청바지. 온몸으로 관심을 갈구하던 나의 패션은 나를 사회대 핑크남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 분명한 건 그때의 나도 (지금처럼?) 쑥스러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 옷에 관해서는 당당(?)했던 것 같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당당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떤 심정으로 그런 복장으로 다녔을까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이미 나는 홍대병이 많이 진행된 상황이지 않았을까 싶다.
홍대병(aka. 힙스터). 스스로 문화적으로 비주류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어다. 문화적으로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겉으로 보이는 '차이'만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꺼무위키-
남들과 취향이 다르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점점 더 마이너한 취향을 쫓았던 것 같다. 쇼핑은 쇼핑몰 인기순으로 정렬 후 최소 페이지 3까지는 가서 거기서부터 탐색하기. 멜론에는 검색도 안 되는 프랑스 일렉트로 하우스 밴드의 노래 찾아 듣기 등. 당시 나의 만행은 홍대병 그 자체였다.
환경이 치유해준 홍대병
그토록 유별난 나의 홍대병(대2병)의 전성기도 오래가진 못했다. 새로운 환경이 시작된 계기인 컴퓨터공학 복수전공이 나의 홍대병을 많이 치유해줬다. 내가 복수전공을 신청한 당시에도 지금처럼은 아니지만 컴퓨터공학 복수전공이 꽤 인기 있었다. 그렇지만 컴퓨터공학 교수님들은 어떻게 복수전공을 신청하게 됐냐고 종종 물어보실 정도로 문과대에서 신청하는 경우는 흔치 않긴했다.
여하튼, 그렇게 낯선 환경에서 친구들 없이 홀로서기(?)를 하게 된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눈에 띄지 않기'라는 혼자만의 미션을 수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내 옷장 안의 색깔은 점점 어두워졌다. 🎨 강의실 자리는 맨 오른쪽 뒷자리, 마스크와 검은색 나이키 야구모자와 회색 챔피언 후드티가 나의 최애템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홍대병으로서의 소신(?)을 지킨 부분들도 적잖이 있었지만 낯선 환경 속에서 홍대병의 많은 부분들이 치유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쇼핑은 '인기순' 3페이지부터
나의 이 부끄러운 홍대병 일대기에는 차마 적지 못한 더 부끄러운 일화들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못 차린 나는 여전히 홍대병을 완쾌하진 못했다. 사실은 완쾌하고 싶은 의지도 없긴 하다...ㅎㅎ 소신 있는 취향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홍대병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하는 변명을 끄적여본다.
여전히 베스트셀러라는 말에 호감이 떨어지는 나는 언제까지 이 컨셉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 떨쳐내긴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원래 이 글의 제목으로 생각했던 문장을 끝으로 글을 이만 마무리하려 한다...
"힙스터가 되고 싶어요!"